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콩 경무처 (문단 편집) === [[영국령 홍콩]] 왕립경무처장 === [[1990년대]] 임명된 마지막 두 명의 [[중국인]] 처장들을 제외한 모두가 [[영국인]]이다. 이 때 이름은 왕립 홍콩경찰 경무처였다. * 윌리엄 케인(William Caine) - [[1841년]] ~ [[1844년]] [[2월]][* 비공식으로 홍콩 경찰이 창설되기 전에 해안방어와 질서유지 업무를 맡고 있던 [[영국 해병대]] 장교다. 그의 직함은 최고 행정관(Chief Magistrate)이였으며 이후 홍콩 총독을 지냈다.]: 홍콩 경찰과 [[홍콩 소방처]]의 기초를 닦았기에[* 홍콩 경찰이 [[영국군]]과 비슷한 제식을 채용하게 된 것도 군인이던 이 사람이 기초를 닦았기 때문이다. 특히 [[영국 해병대]]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었다.] 현지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간주되는 인물이다. [[홍콩섬]] 완차이 경무처 본부의 건물들 중 하나가 그를 기리는 뜻에서 이름을 딴 케인 하우스(Caine House)이다. * 조지 토마스 핼리(George Thomas Haly) - [[1844년]] [[2월]] * 존 브루스(John Bruce) - [[1844년]] [[2월]] ~ [[1845년]] * 찰스 메이(Charles May) - [[1845년]] ~ [[1860년]]: 영국 [[런던광역경찰청]] [[경정(계급)|경정]] 출신 [[경찰관]]이다. 윌리엄 케인이 창설자라면 찰스 메이는 홍콩에 [[영국]]식 사법 체계를 이식시켰다. * 에드먼드 헤이손(Edmund Haythorne) - [[1860년]] ~ [[1862년]]: 임명 당시 [[영국 육군]] [[대령]]. 이후 [[대장(계급)|대장]]까지 진급했으며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. * 윌리엄 퀸(William Quin) - [[1862년]] ~ [[1866년]]: 또 다른 영국의 주요 식민지인 [[인도 제국]] [[봄베이]] 경찰 출신이다. * 월터 메레디스 딘(Walter Meredith Deane) - [[1866년]] ~ [[1892년]] * ''직무대리'' [[육군]] [[소장(계급)|소장]] 알렉산더 H. 애덤 고든 (Alexander H.Adam Gordon) - [[1892년]] ~ [[1893년]] * 프랜시스 헨리 메이(Francis Henry May) - [[1893년]] ~ [[1902년]] * 조셉 프랜시스 베들리(Joseph Francis Badeley) - [[1902년]] ~ [[1913년]] * 찰스 메서(Charles Messer) - [[1913년]] ~ [[1918년]] * 에드워드 두들리 코스카덴 울프(Edward Dudley Corscaden Wolfe) - [[1913년]] ~ [[1934년]] * 토마스 헨리 킹(Thomas Henry King) - [[1934년]] ~ [[1941년]] * 존 펜파더-에반스(John Pennefather-Evans) - [[1941년]]: [[말레이 제도]]에서 경찰로 근무했으며 [[태평양 전쟁]] 당시 홍콩 전투 직후 총독이 일본에 항복할 때까지 경무처장을 맡았다. * 찰스 헨리 샘슨 [[대령]]([[대령|Colonel]] Charles Henry Samson) - [[1946년]][* [[태평양 전쟁]]에서 일본이 미국의 원폭 후 무조건 항복한 뒤 홍콩은 영국에 반환되었고 1946년 한시적으로 [[영국령 홍콩]]은 [[영국군]]의 군정 치하에 있었다.] * 던컨 윌리엄 맥킨토시(Duncan William McIntosh) - [[1946년]] ~ [[1953년]]: 전직 [[싱가포르 경찰청]] 부청장이다. * 아서 크로포드 맥스웰(Arthur Crawford Maxwell) - [[1953년]] ~ [[1959년]] * 헨리 히스(Henry Heath) - [[1959년]] ~ [[1966년]] * 에드워드 타이러(Edward Tyrer) - [[1966년]] ~ [[1967년]]: '''가장 비밀이 많은 처장.''' [[1967년]] [[5월]] [[67폭동]]이 일어났을 때 휴가를 내고 영국에 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을 제대로 지휘할 수 없었다. 서둘러 홍콩으로 돌아간 6월부터는 제대로 된 진압작전을 펼치는가 싶더니 6월 14일에 현지 상황을 보고한다는 이유로 런던으로 날아갔다.[* 보통 이런 상황에서 보고하러 본국으로 가는 것은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에 한다. 때문에 사태가 아직 진정되지 않은 국면에서 보고를 하겠다고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서 런던으로 간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소리.] 일주일 뒤인 21일 '건강상의 이유'로 조기 퇴진을 '허락'받았는데 이 시점에서 폭동이 아직 '''진행 중이었다.''' 때문에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한다는 것은 핑계고 모종의 이유로 경질된 것이라는 의심을 받았지만 이 건에 대해 입을 열지 않은 채로 2004년 영국에서 사망하면서 진실은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.[* 유력한 가설은 데이비드 개스 정무장관과 타이러 경무처장이 진압 전략을 놓고 마찰을 빚었다는 것이다. 평소 같았으면 두 명 모두의 상급자인 총독이 중재를 했겠지만 문제는 총독 데이비드 트렌치 경이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는 것이다. 때문에 임시로 총독의 권한을 갖게 된 개스와 타이러의 갈등이 지속되면서 총독부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 영국 내각이 직접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.] * 에드워드 '테드' 이츠(Edward 'Ted' Eates) - [[1967년]] ~ [[1969년]]: 타이러 처장 밑에서 작전부처장으로 근무하다가 '''67폭동 와중에''' 타이러가 물러나면서 엉겹결에 처장직을 넘겨받았다. 폭동이 시작됐을 때 타이러가 휴가 중이어서 그가 며칠간 직무대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업무에 적응은 그나마 빨랐다고 한다. * 찰스 페인 수클리프(Charles Payne Sutcliffe) - [[1969년]] ~ [[1974년]] * 브라이언 슬레빈(Brian Slevin) - [[1974년]] ~ [[1979년]]: 이 사람 임기 때 [[대테러부대]]인 SDU, 즉 비호소대가 PTU대의 특수부대로 창설된다. SDU소대는 초창기 영국 SAS에 위탁교육으로 영국식 대테러 훈련을 이수했다. * 로이 헨리(Roy Henry) - [[1979년]] ~ [[1985년]]: 이 사람 임기 때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[[중영공동선언]]이 발효되었다. * 레이먼드 애닝(Raymon Anning) - [[1985년]] ~ [[1989년]]: 마지막 [[영국인]] 경무처장이다. 이후 [[홍콩 반환]]에 대비해 현지 [[중국인]]에게 처장을 넘기기 시작했다. * 리콴하(Li Kwan-ha | 李君夏) - [[1989년]] ~ [[1994년]]: [[홍콩 경찰]] 역사상 최초의 [[중국인]] 처장이다. 1957년 입직했다. * 에디 휘(Eddie Hui | 許淇安) - [[1994년]] ~ [[1997년]]: 마지막 왕립 홍콩경찰 경무처장으로 [[홍콩 반환]] 이후에도 홍콩특별행정구 경무처장으로 그대로 근무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